### **부록**

#### **한 아이, '부랑아(The Waif)' 이야기**

이 글은 저희 워크숍에 참여했던 잉그리드라는 배우가 남긴 메모입니다. 그녀가 '부랑아'라는 가면을 쓰고 겪었던 특별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죠.

‘제가 ‘부랑아’를 처음 만난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 쓴 글입니다. 하지만 체감상으로는 훨씬 더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아요.

저희는 이 아이의 과거를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아마 인생 대부분을 고아원에서 보냈을 거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밤, 성냥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고아원 전체를 홀랑 태워버린 거죠. 그 후로는 딱히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공원에서 남들이 버린 피임기구나 낡은 병뚜껑 같은 것들을 주워 모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마 이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아이가 처음으로 애착을 보인 물건은 파란색 풍선이었어요. 끈적끈적한 손가락으로 그 풍선을 꽉 붙들고 있었죠. 처음에는 다른 가면들을 무척 낯설어했고 친구를 사귀는 법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게 되었어요. 당시 할아버지는 그저 ‘사람들을 때리는 화난 아저씨’로만 알려져 있었죠. 아이가 도착했을 때, 탁자 위에 놓인 작고 갈색인 곰 인형을 발견했어요. 아이는 보자마자 그 인형에 마음을 빼앗겼고,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죠. 바로 그 순간, 배경에서 류머티즘 걸린 늙은 개처럼 으르렁대고 있던 할아버지가 부랑아의 등 뒤에서 확 덮치더니 곰 인형을 낚아채 가버렸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눈물을 쏟아냈어요.

부랑아에게 그 곰 인형은 완벽한 존재였어요. 부드럽고, 폭신하고, 꽉 껴안고 만지작거리기에 더할 나위 없었죠. 아이는 물건과 접촉할 때 더 안정감을 느꼈거든요. 그런 곰 인형을 빼앗긴 것은 그때까지 아이에게 일어났던 일 중에 가장 격렬하고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잉그리드) 의식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느꼈던 기억이 나요. 진짜 눈물과 공포심이 느껴졌죠. 속으로 ‘맙소사, 이건 말도 안 돼. 가면을 벗으면 내가 진짜로 울고 있었다는 걸, 정말로 속상해했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될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마치 ‘부랑아’의 경험이 제 안의 깊은 감정적 반응을 촉발시킨 것 같았습니다. 제 안의 또 다른 내가 이 충격적인 상황을 지켜보고는 있지만, 그것을 멈추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이었죠. 그날 막바지에 힘들었던 게 과연 ‘나’였는지 ‘가면’이었는지 말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만약 제가 가면을 쓰지 않았다면, 즉 곰 인형을 빼앗긴 어린아이를 ‘연기’하고 있지 않았다면, 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속상한 척 연기만 했을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부랑아는 감정적인 삶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생생해서 자신의 반응을 절대 ‘연기’할 수 없었거든요. 이 가면 수업이 끝난 후에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제 감정을 억누르는 법을 배워왔는지를, 특히 슬픈 일이 있을 때 말이에요.]

얼마 후 키스(이 책의 저자)는 할아버지가 곰 인형을 돌려주는 ‘훈훈한’ 장면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인형을 되찾았을 때 아이의 행복감 또한 슬픔만큼이나 강렬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사탕을 아주 좋아해요. 한번은 포도를 주었는데, 입에서 자꾸만 툭툭 떨어지는 거예요. 이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았죠. 그저 혀와 입천장을 쪽쪽거리며 빨아먹기만 할 수 있었어요.

아이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관객들이 너무 가까이만 오지 않으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어요. 키스는 좋은 친구였죠. 아이는 항상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 같았고, 가끔 그를 향해 무언가 말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가면들과는 다른 특별한 점이었어요.

말하기: 아이가 처음 낸 소리는 아랫입술 위로 윗니를 가져가 ‘쪽’ 하고 빠는 소리였어요. 그러다 점점 자신감이 붙자 ‘코오’ 하는 소리를 가장 좋아하게 됐죠. 기분이 좋을 때는 짧고 강하게 ‘하!’, ‘히!’ 같은 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앉아’, ‘일어서’, ‘사탕’ 같은 짧은 단어를 배우는 건 어렵지 않았고, 배우려는 의지도 강했어요. 곧 “메리에게는 어린 양이 한 마리 있었네” 같은 동요를 배울 수 있었지만, 항상 자기 마음대로 끝부분을 지어내곤 했습니다. 아이는 ‘양털(fleece)’이나 ‘꼭 따라다녔네(bound to go)’ 같은 단어에 어리둥절해했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아마 그래서 동요의 절반을 자기가 직접 지어냈나 봅니다.

_메리에게는 어린 양이 있었네_

_눈처럼 하얀 양이었지_

_메리가 가는 곳 어디든_

_어린 양이 한 마리 있었네._

이게 아이가 부르던 버전 중 하나예요. 물론 가면을 써야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겠지만요. 동요를 배우기 전에 열까지 세는 법을 먼저 배웠습니다. 제 생각에 동기는 관객이 있다는 점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는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조금 즐기는 편이라, 보여주는 게 좋았던 거죠. 보상으로 사탕을 받는 것도 물론 좋았고요.’

#### **세 가지 꿈**

어떤 꿈들은 마치 ‘메시지’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꾼 꿈이 아니죠. 잠에서 깨어나도 마음속에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계속 그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 그런 꿈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
가족들이 고무로 만든 달걀을 먹고 있습니다. 저를 불러 제 몫을 먹으라고 합니다. 껍질에는 금이 가 있고, 그 틈으로 역겨운 속이 깊숙이 들여다보입니다. 저는 제 달걀을 높은 선반 위에 올려두고 자리를 뜹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조금 느리긴 해도 즐거운 척하며 자기 몫의 달걀을 먹고 있습니다.

둘.
선생님들이 저를 위해 보물을 모아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는 유리였고, 진주는 플라스틱이었으며, 황금은 빛이 바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보물을 지키고 서 있다가, 이내 그것이 전부 쓰레기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멀리 떠나버립니다.

셋.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가 하나 있습니다. 그 안에는 거대한 뱀이 들어 있어서, 한번 열면 그 괴물이 영원히 쏟아져 나올 거라고 합니다. 제가 뚜껑을 들어 올리자, 잠시 그 뱀이 우리를 파괴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내 뱀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상자 맨 밑바닥에는 진짜 보물이 놓여 있습니다.
